01.
아를(Arles) 시대
아를에서 빈센트는 파리 시절에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일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본질적으로 유지했던 이 화법은 우리가 오늘날 빈센트에게서 전형적으로 느끼는 바로 그 화법이다. 고흐는 남부 프랑스의 눈부신 색채에 대한 희망을 품고서 아를로 이주했다. 그는 편지에서 이주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붉은색과 초록색, 푸른색과 오렌지색,
짙은 노란색과 보라색의 아름다운 대조를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실제로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상호상승을 이룰 수 있도록, 보색의 대비를 이루면서 순수하고, 강력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상의 자연적인 색을 넘어섰다. 종종 그는 색채를 과장하거나 그가 각각의 그림을 위해서 발전시킨 색채 체계에 적합하도록 사용했다. 빈센트의 그림에서는 초록색 하늘, 분홍색 구름, 짙은 청색의 길이 있다. 그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 적고 있다.
나는 색채의 위치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일련의 순서와 정확성을 받아들였어.
나는 무의미한 짓을 하지 않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하지.
내가 사용한 색이 내 그림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이 사물의 색과 동일한 색인지 구분하는 문제는 더 이상 내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눈부신 색과 강렬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그림은 결코 속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나머지 색을 약화하거나 결합하는 중간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조화로운 전체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이외에도 색채는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상징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밤의 카페 풍경'(1888년)처럼 색채는 분위기를 표현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무시무시한 인간의 정열을 표현하려고 했어.
공간은 푸르고 붉으며 생기 없는 노란색이지.
가운데에 초록색 당구대가 놓여 있고, 오렌지색과 초록색의 둥근 불빛을 만들어내는 레몬처럼
노란 4개의 램프가 있지.
고흐는 재빠르고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신속하게 그리는 그의 화법은 한 편으로는 그의 창작욕에서 나오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 무의식적인 부분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그림에 더 많은 생기와 강렬함과 직접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더 큰 전체 효과를 위해서 소재를 단순화했다. 비록 그가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충동적으로 그리거나 도취해서 그리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는 머릿속으로 그려보거나 여러 장의 스케치를 통해 철저히 준비했다.
그는 언제나 소재를 눈앞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기억이나 생각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눈으로 본 것을 종종 심하게 변형시키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연에 충실한 상태였고, 추상적인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았다.
고흐는 물감을 희석하지 않은 채 걸쭉하게 칠했으며, 가끔 물감을 튜브에서 짜서 직접 화폭에 바르기도 했다.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것을 인해 그의 붓 자국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고흐 특유의 붓놀림을 통합시키는 것에 아주 적합했다. 매끄럽고, 윤곽선이 둘러쳐진 일본풍의 채색면 이외에도 빈센트는 이미 파리 시절에 색을 짧은 선 모양으로 나란히 칠하는 기술을 개발했었다.
자신의 그림을 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형상화하기 위해 그는 생 레미 시절에는 이런 선을 율동적으로 구성하고, 물결 모양, 원 모양, 나선형 모양으로 배열하기 시작했다. 1889년에 제작된 자화상이나 1889년에 그려진 '별이 빛나는 밤'이 이를 대표하는 예이다. 빈센트는 각각의 화법을 소재와 연관 지어서 선택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이 고흐의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재가 지닌 본질과 특성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그는 외젠느 보쉬(Eugène Boch)의 초상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이 그림에 내가 그에 대해서 느끼는 경탄을, 사랑을 담고 싶었어.
머릿속으로 나는 무한한 것을 그렸어.
나는 내가 지금까지 성취했던 것 중에서 가장 진한과 인상적인 파랑색으로 간단하게 배경을 그렸어.
그리고 이 간단한 구성을 통해서 빛나는 짙은 파랑색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금발의 머리는
짙푸른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수수께끼와 같은 것을 지니게 되었어.
후기에 제작된 오베르의 풍경화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흐린 하늘 아래 한없이 넓은 밭이 있고, 나는 슬픔과 극단적인 고독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지.
빈센트는 형식과 색채를 변화시킴으로써 의도한 강렬함을 표현할 수 있었다. 고흐는 형태는 단순화했지만, 색채는 점점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그 밖에도 고흐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였다. 많은 그림에서 그는 언어를 통해서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전래한 상징 이외에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상징 언어를 사용했다. 그 상징 언어의 의미는 그의 생애, 사고와 감정 세계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케치 판, 파이프, 양파, 봉랍이 있는 정물화에서 그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던 물건들을 배열했다. 건강 지침서와 그 책에서 불면증에 대해서 좋다고 권해준 양파, 그가 좋아하던 파이프와 담배통, 테오가 보낸 편지 한 통과 친구와의 밀접한 결합을 상징하는 봉랍, 삶의 불꽃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불타고 있는 촛대, 금주의 상징인 빈 포도주 병 등이 그와 같은 대상들이었다.
'달이 빛나는 밤의 산책'(1890년)에서는 달이 솟아오를 때 올리브 정원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에서 산책하는 한 쌍의 사람이 보인다. 남자 인물은 붉은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은 여인과 함께하는 '진실한' 삶과 그것의 대용인 자연과 자연을 표현하는 예술에 대한 빈센트의 소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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