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 대하여

    01.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의 초상화

    미켈란젤로 디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다.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피렌체, 로마 등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인생의 고뇌, 사회의 부정과 대결한 분노, 신앙을 미적으로 잘 조화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02.
    그의 생애

     

    그림 공부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는 등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아 집안에서 자주 꾸중을 듣는 소년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가에서 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에 미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14세 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를 통하여 도나텔로 작품을 배웠다.

     


    피에타

     

    피에타

    1499년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출신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를 받아 후에 성베드로 대성당에 놓일 피에타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조각 예술의 대표적인 명작 중 하나로 그의 수많은 피에타상 중 최초의 작품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겨 유일하게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다비드

     

    다비드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의 위탁으로 다비드를, 즉 소년 다윗 조각을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계속하여 원형 부조인 성 모자를 만들고, 원형화 성 가족을 그렸다. 1504년 피렌체 시청의 위촉으로 대회장의 벽화 카시나 수중 접전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맞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기마 접전도를 그렸으므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효성 작가가 쓴 계몽사 그림 위인전기《미켈란젤로》에 따르면, 당시 미켈란젤로는 비둘기의 허리처럼 허리가 굽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520년 피렌체의 메디치가 예배당에 안치할 조각상을 10년에 걸쳐 조각하는 한편,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였다.

     

    이효성 작가가 쓴 계몽사 그림 위인전기《미켈란젤로》에 따르면, 피렌체 공화국을 사랑한 미켈란젤로는 1529년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때 방위 위원으로 뽑혀 성을 쌓았다. 하지만 피렌체를 점령한 카를 5세는 성을 쌓아 자신과 싸운 미켈란젤로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성당 대벽화

     

    시스티나 성당 대벽화


    후에 메디치가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와 사이가 나빠져, 1534년 사랑하는 고향인 피렌체를 영원히 떠나 로마에 정착했다. 피렌체를 떠날 때 그는 같이 일한 노동자들에게 자기 작품을 팔아서 임금으로 대신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


    로마로 거주지를 옮긴 미켈란젤로는 새로운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경당의 정면 대벽화를 위촉받았다. 노령으로 발판 위에서 떨어져 가면서까지 혼자 꾸준히 그려 6년에 걸쳐 작업한 결과 그의 유명 작품인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의 실력을 존중하여, 어느 추기경이 미켈란젤로를 무지하다고 업신여기자, "무식한 사람은 추기경님입니다. 추기경님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며 편들어 주었다 한다. (이효성(1996))

    1550년에는 바티칸 파올리나 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 '바오로의 회심'(1549년)과 '십자가의 베드로'(1550년,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는 순교 그림)를 완성했다. 

     

    1542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로마 가톨릭의 출발점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기독교 공동체의 선교사로서 경건하게 살아간 두 성인의 그림을 그리면서 로마 가톨릭의 지도자인 교종들을 비판하는 뜻을 담아냈다.

    1550년대 이후 미켈란젤로는 죽음을 의식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열두 점의 드로잉을 남기는데, 이는 그의 만년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 등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1564년 89세를 일기로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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